어제 에릭 로메르 감독의 <겨울 이야기>를 봤다. 1992년 작이었고 그 시절 파리 풍경이 차분하고 따뜻한 색감으로 화면에 나타났다. 감각적인 미장센, 긴 대화로 이어지는 전개 방식이 이 감독의 특징이라는 걸 이 영화가 다 끝나고나서야 검색을 통해 알게되었다.
사계절 시리즈였다. 한국에 사계절 시리즈라고 하면 윤석호 드라마 감독을 떠올리는데 이 감독이 만든 사계절 시리즈를 모조리 봤을 정도로 나는 그 누구보다 계절과 관련된 단어를 무척 좋아한다. 때문에 이 시리즈를 더욱 놓칠 수 없었다. 여름과 가을이 섞인 추석 낮, 이 감독의 사계절 시리즈 첫번째작인 <봄 이야기>를 재생했다.
1990년작, 파리 거리, 길죽하고 큰 대문, 낮은 채도의 옷 빛깔, 넓게 파인 상의 목 라인, 씽크대 위에 와인, 정갈한 접시 등 감각적인 미장센이 돋보인다. 잔느, 나타샤, 나타샤의 아버지, 나타샤의 아버지의 여자친구 이브. 147분여동안 이 4명의 인물이 영화를 이끌어간다. 극단적인 장치는 어디에도 없다. 오전,오후,하루,날 안에서 인물 간의 관계가 드러날 뿐이다. 또 영화는 각 등장인물의 자세한 내막에 대해 함구한다. 단지 이 영화 장면에서 필요로 하는 몇가지 정보만 대화를 통해 나타낸다. 대화는 극중 잔느의 직업인 '고등학교 철학 교사'답게 철학적인 이야기가 자주 언급된다. 특히 이 네명이 모두 한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철학 이야기는,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이 얼마나 더 재미있을 수 있을지 알게 해준다. '형이상학' '선험적' '초월과 초월주의'가 단어가 오고 갈때 이성적인 잔느와 그녀의 모습을 존경어린 표정으로 보는 나타샤의 아버지, 그의 여자친구인 이브와 셋의 철학 이야기를 그저 지켜만 보는 나타샤 이 넷의 분위기는 우리 일상에서 종종 마주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. 비록 그 내용은 '철학'이 아닌 다른 이야기일 때가 더 많지만. 특히 이 영화에서 중요 소재로 등장하는 '잃어버린 목걸이'는 결국 영화 마지막 부분에 해결되는데 이 부분이 바로 에릭 로메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니었다 싶다. 잔느와 나타샤가 만났단 것처럼, 우연은 항상 우리 삶 곳곳에 놓여있으며 그것이 일상에 깊게 파고들 수 있다는 것을.
계속해서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화를 봐야겠다.
+
등장인물들의 프렌치 패션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. 여성의 라인을 돋보일 수 있는 코디부터 스카프 하나로 포인트를 준 편안한 코디까지, 몇해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몇몇 패션 아이템도 눈에 띈다. 이래서 패션은 돌고 돈다고 하는걸까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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